國際水路機構 東海표기에 대한 硏究

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 and East Sea

 

김 신 (경희대 교수)

  

. 서  

  국제수로회의는 1919년 6월 런던에서 개최되어 영국,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중국, 일본, 덴마크, 그리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페루, 포르투갈, 핀란드 , 스페인, 스웨덴의 18개국과 영국 식민지였던 호주, 인도 및 이집트의 대표자가 참석하였다. 일본에서는 해군 중좌 사콘지 세이조(左近司政三), 야마구치 쿠마히라(山口熊平), 체신기사 소 카즈에이(溱一磨) 세사람이 참석하였다. 이 회의는 실질적으로 1912년의 만국항해회의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국제수로회의로서는 첫 번째 회의이다

 20세기들어 바다의 명칭이 국제적으로 정리된 중요한 국제회의가 당사자인 한국의 참여없이 개최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동해의 명칭이 1세기동안 특정국가의 명칭으로 표기된 계기가 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80년전 국제수로회의에 한국대표가 참가하였다면 지금과 같은 표기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과 같은 환경에 놓여 있었던 호주, 인도, 이집트와는 달리 한국은 어떤 의사결정에서도 소외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은 국제수로기구 회원국 70개국중 12번째로 많은 분담금을 내는 등 국제수로기구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세계지도에서 4개국으로 둘러싸인 바다명칭의 표기가 특정국가의 명칭으로 지칭이 되고 있는 경우는 21세기에 들어 와서는 하나도 없다.  "북해"(North Sea)에서 보는바와 같이 주변국의 합의에 의해 자연스럽게 개칭되고 당사국들의 이해속에서 조용히 분쟁없이 해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IHO의 결의안에 의하면 동해와 같이 몇 개 주권국가의 영향하에 있는 바다명칭에 있어 한이름으로 통용되지않을 경우에는, 현재 관련국가에서 쓰고 있는 명칭을 새이름이 조정될 때까지 모두 표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내년에는 21세기들어 처음으로『해양과 바다의 한계』(2002) 책자가 새로 개정될 예정으로 있어 그동안 IHO의 결의사항의 준수를 주장해온 한국으로서는 큰 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국제수로기구의 설립배경과 운영, 그리고 국제수로기구에서 동해명칭이 바뀌게 된 과정을 분석해보고 국제법에 의거한 대응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 국제수로회의의 창설

 

  1. 1919년 런던 국제수로회의

 

  1919년 6월 런던에서 개최되어 영국,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중국, 일본, 덴마크, 그리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페루, 포르투갈, 핀란드 , 스페인, 스웨덴의 18개국과 영국 식민지 호주, 인도 및 이집트의 대표자가 참석하였다. 일본에서는 해군 중좌 사콘지 세이조(左近司政三), 야마구치 쿠마히라(山口熊平), 체신기사 소 카즈에이(溱一磨) 세사람이 참석하였다. 이 회의는 실질적으로 1912년의 만국항해회의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국제수로회의로서는 첫 번째 회의이다. 이회의에 대표로 참석한 사콘지 세이조(해군 중좌, 兵28)는 해군차관을 역임하고 해군중장으로 예편한 뒤, 상공대신과 국무대신을 역임했다.

야마구치 쿠마히라(해군 중좌, 兵30)는 영국주재로 있다가 회의에 참석했는데 2년 뒤 전역했다.  

 20세기들어 바다의 명칭이 국제적으로 정리된 중요한 국제회의가 당사자인 한국의 참여없이 개최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동해의 명칭이 1세기동안 특정국가의 명칭으로 표기된 계기가 된 것이다.

 

  2. 국제수로회의의 목적

 

 국제수로회의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가) 각국에서 간행한 항해도 및 수로도지의 구성편찬 등에 있어 모두 같은 방식을 채용하여 상호 각국에서 사용하도록 할 것

 (나) 각국 수로사업에 관한 보도를 신속하게 교환할수 있는 조직을 제정할 것

 (다) 각국의 수로전문가들이 서로 만나 수로관계의 문제에 관해 토의, 상의할 기회를 줄 것

 등의 3개항으로서, 1912년의 만국항해회의와 마찬가지로 이 회의의 주요목적이었다.

 

 3. 결의사항과 그 실행

 

  이 회의의 성격과 결의사항의 실행관계에 대해서는 다음 항에 의해 알수 있다.

 (가) 6월 24일 개회식에서의 연설에서 영국 수로부장은 다음과 같은 선언을 했다.

‘본인은 처음부터 본회의의 결의가 곧바로 실행되리라고는 예상치 않는다. 또한 참석한 여러 대표의 다수는 각종 사항에 대해 마지막 결정을 내릴 지위에 있지 않다는 점은 명백한 일이다. 그러나 본인은 각 대표자가 충분히 심의 가능한 사항 및 일치가 가능한 사항에 대해서는 각자의 의견과 함께 이를 본국정부에 보고하여 그 실행을 꾀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나) 이에 대해 회의가 시작된 직후 노르웨이 위원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서 영국 수로부장은 ‘결의사항의 실행은 각국정부의 찬부를 선결로 하며, 경비 및 그 밖의 조건에 의해 결정 되어야만 하는 사항으로, 본 위원등은 단순히 기준이 되는 여러 사항에 관해서 합의한 후 이를 기록에 남기려 하는 것에 불과하다.’ 라고 답변하였다.

 (다)7월 16일 본회의 마지막 총회에서 의장인 영국 수로부장의 제의에 대해 만장일치로 다음과 같은 결의가 내려졌다.

  “각국정부에서는 본회의의 결의사항을 승인한 후 가능한 한 신속히 이를 실행할 것을 희망한다.”

  이상의 사실에 의해 살펴보건대 실행 시기를 확실히 정하지 않고 關係圖誌의 신간, 혹은 개정판을 기회로 하여 점차 결의방식대로 개정시켜 보려는 희망사항이었다. 다시말하면 제1차 수로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은 바뀌지 않는 것이 아니라 향후 신간이나 새로운 개정판에 의해 개정될 수 있음을 뜻한다. 이것이 국제수로기구의 설립정신이었던 것이다.  

 

 4. 각국의 참석위원

 

 이 회의에 참석한 각국위원은 다음과 같다. 이들 중에는 수로분야의 전문가도 있고 그렇지 못한 자도 있으나 새로 제정된 국제수로국령에는 이후로 열릴 국제수로회의위원으로서 되도록 두명이상의 수로전문가를 참석시키도록 규정되었다.

 

아르헨티나 해군대령 E. Moreno, 런던공사관부

           해군중령 J. Fablet, 런던공사관부

호주       해군대령 A. S. Littlejohns,

벨기에              F. Urbain, 교랑 및 도로성 수로부장

           해군대령 H. Bouckaert, 수선감독장

           해군대령 J. Niscot, 벨기에령 콩고 수로부장 

브라질     해군소령 A. R. de Vasconcellos, 런던공사관부

칠레       해군중령 F. E. Merino, 런던공사관부

중국       해군중령 진소관, 런던공사관부 

덴마크     해군대령 J. C. D. Bloch, 수로부장

이집트              G. F. G. Purvis, 연안감독 및 어업부장

                    J. Ball 박사, 이집트측량성기사

프랑스              M. J. A. Renaud, 수로부장

                    C. D. M. Rollet de l' Lsle, 제일급 수로기사장

           해군중령 L. E. Berling, 수로지과장

           해군소령 A. J. L. de Foureauld

영국       해군소장 Sir John F. Parry, 해군수로부장

           해군대령 J. A. Webster, 수로부항해과장

           해군대령 H. P. Douglas, 수로부차장

           해군대령 C. V. Smith 수로부수로지과장

           해군중령 J. A. Edgell, 수로부해도과장

           해군중령 H. D. Warberg 수로부조석과장

그리스     해군대령 M. T. Matthaiopoulos, 수로부장

           해군대령 N. Botassis, 런던공사관부

인도       해군대령 C. S. Hickman, 봄베이항 무관

이탈리아   해군중령 A. Alesso, 파도아대학 측지학 교수

일본       해군중령 사콘지 세이조(左近司政三)

           해군중령 야마구치 쿠마히라(山口熊平)

           체신기사 소 카즈에이(溱一磨)

네덜란드   해군대령 I. M. Phaff, 수로부장

           해군대령 J. H. L. Luijmes, 수로부차장

           P. H. Galle, 네덜란드기상대차장

노르웨이   해군대령 E. Bjorset, 수로부장

페루       해군소장 P. Garezon

포르투갈   해군중령 V. H. de A. Coutinho, 리스본 해군대학교수

           해군대위 H. B. B. Neves

타일란드   해군대령 Phra Pradiyat

스페인     해군대령 E. Sanchiz y Quesada, 런던공사관부

스웨덴     해군소장직무대행 P. J. Dahlgren, 수로부장

           G. W. Littlehales, 수로부기사

           H. C. Graves, 연안 및 육지측량부수로과장

           J. T. Watkins, 연안 및 육지측량부야외기록과장

 

 5. 회의경과개요

 6월 24일 개회되었고, 영국해군 제1군사위원 Wemyss대장이 영국해군성을 대표해서 인사하였고, 프랑스 수로부장  Renaud씨가 각국위원을 대표해서 답사를 낭독했다. 다음으로 영국수로부장 Parry소장을 의장에, 프랑스 수로부장 Renaud씨를 부의장에 추천했다.

 의장은 다시 의사 진행상 각 의안마다 분과회 조직 건을 자문하여 각위원의 소속을 정하고, 분과회의 의장을 다음과 같이 선출하였다.

 

분과                         분과회의장                           일본위원

1분과(해도)       영국 수로부차장 Douglas 대령           사콘지중령 소 기사

2분과(수로지)     미국 수로부장 Simpson 대령             사콘지중령

3분과(등대표)     스웨덴 수로부장 Dahlgren 소장직무대행   소 기사

4분과(수로고시)   네덜란드 수로부장 Phaff 대령            사콘지중령

5분과(잡종간행물) 프랑스 수로부수로지과장 Berling 중령    소 기사

6분과(조석표)     벨기에 수로부장 Urbain 씨               사콘지중령

 

 분과회의 조직은 이와같이 결정되었는데, 각 분과회는 동일 동 시각에 열리지 않으며, 각위원은 어느 분과위원회에도 자유롭게 출석, 토의할수 있었고, 사실상 의장의 교대이외에는 각분과위원회 모두 매회 총회와 차이가 없었다.

 각 분과회에서 가장 신중히 심의된 것은 제1분과(해도)이었으며, 다음으로는 제2분과(수로지), 제3분과(등대표)로 매회 모든 위원이 참여한 가운데 토의되었다. 각국위원은 본회의의 취지를 존중하여 장래공통의 이익을 꾀하기 위해 약 100가지 양식을 들어 가능한 한 각국이 공통된 방식을취하려고 하고 본회의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힘썼다.

 제4분과(수로고시), 제5분과(잡종간행물), 제6분과(조석표)회는 사전에 당해분과소속 두세명의 전문가의 심의를 거친 가운데 결의안을 만들어 이를 각분과 위원에게 제시하여 재론하였다.

 이들 각 분과회의 결의 및 刊行圖誌의 국제교환, 국제수로국의 창설 및 일반사항은 총회를 소집하여, 영국수로부장 주재하에 최종결의안을 제작했다. 그리하여 7월 16일 마지막 총회를 마치고 의장인 Parry소장이 폐회를 선언, 각국위원의 노고를 위로하고 네덜란드 수로부장 Phaff대령이 각국위원을 대표하여 산회하였다.

 

 6. 결의사항의 개념

 

 이 회의의 결의사항의 개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의안중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로 생각된 것은 수심, 높이의 단위로서 각 관계분과를 통해 각위원들이 가장 힘을 주어 역설한 부분이었으나 결국 만국공통의 단위로서 미터법을 적용하기로 하고, 이것이 허용되기까지는 각국의 現用單位에 의거하기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일본위원은 ‘만약 본회의에 있어 각국일치의 체결을 보게된다면 제국수로관헌은 장래 미터법에의 개정에 있어 추호의 주저함도 보이지 않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라고 발표했다. 海圖에 사용할 기호 및 약호에 대해서 대체로 종래의 영국식이 채용되었지만 소수의 것은 각국의 제안에 의해 수정된 것도 있다.

 그때까지 산의 높이, 등대의 높이 등을 관측하는 기준면은 해도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영국, 미국은 만조수위, 프랑스, 독일, 러시아, 이탈리아 및 네덜란드는 평균수면을 기준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영국, 미국과 같이 만조면을 따르기는 하지만, 이를 상세히 분류하여 일본은 략최고고조면(略最高高潮面), 영국은 한사리(大潮)의 평균만수면이며, 미국은 평균만수면을 채용하고 혹은 략최고고조면(略最高高潮面)이라는 식으로 제각각이었다. 그래서 서로 각국해도를 재판하는 경우 하나하나 이것을 자국의 양식으로 고치는 것은 커다란 수고일뿐 아니라 실제로 불가능한 경우도 있으므로 그대로 개판하고 있다. 그 때문에 해도사용자의 입장에서 보면 정밀한 조사를 요하는 경우 높이의 기준면이 무엇인가를 고려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회의에서는 이런 불편을 제거하기 위해 각국이 함께 평균수면을 계측하기로 결의했다. 이 개정은 해도제작자로서는 매우 번거로운 일이다. 또 종래의 높이에 적용할 개정량은 장소에 따라 상이하여, 인천과 같이 수십피트에 이르는 곳도 있으며, 동해와 같이 일피트 미만인 곳도 있다.

 높이의 기준면과 반대되는 수심의 기준면도 전자와 마찬가지로 제각각이므로 수심의 국제기준면 제정에 관해서 영국정부의 제안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전자와 달리 매우 복잡하여 마침내 이번 회의에서는 합의를 보지 못하고 국제수로국의 연구에 맡겨졌다.

 수로지, 등대표, 수로고시등 서지에 관해서는 특기할 만한 결의는 없었다. 이들을 해도와 같이 거의 기호만으로 나타내면 다른 문자로서 적어야 하는 필요로부터 양식의 통일은 다소의 이익을 얻을수 있겠으나 각국언어문자의 상이점이 이 이점의 대부분을 상쇄하게 되므로 이에 따라 이번 회의에서는 결과를 보지 못했다.

 잡종간행물로서 자국연안의 거리표, 수로부사업사 및 자국연안의 地名索引을 간행하기로 결의되었으며, 이는 수로부의 금후 사업으로서 남겨졌다. 거리표작성에 대해서는 각국이 동일한 공통점을 정하기로 결의되어 이 공통점의 선정은 국제수로국의 연구에 맡겨졌다.

 간행도지의 국제교환은 회의참가국 모두와 필요한 圖誌의 교환을 행하게 되었으며, 또 교환도지에 있어 서로 재판하는 것은 자유로이 하기로 결의되었다. 또 서로 타국의 간행물을 재판할 때는 작업이 중복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각년도 초에 서로 예정작업계획을 서로 통보하기로 하였다.

  국제수로국의 창설은 각국위원이 일치하여 국제수로국의 창설을 위해 자국정부에 진언하기로 결의하고 창설특별위원으로서 영국, 미국, 프랑스의 세 수로부장을 선출했다. 이것이 오늘날의 국제수로국을 낳게 된 것이다.

 또 희망사항으로서 각국의 부표식 및 항무신호를 국제적으로 통일하기로 결의하였는데 이는 가장 바람직스러운 일이며 1912년 런던항해회의에서도 의논되어 상당한 의견의 일치를 보았으나 결국 금후의 문제로 남겨졌다. 각국시각대법(時刻帶法)의 채용을 희망하는 결의를 했으나 이는 이미 각국해군에 채용되었다.

 

7. 1919년의 국제수로회의의 결의사항

 

   1) 해도

 1919년 회의에서는 해도와 바다의 한계에 관한 중요한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그중 해도에 관한 부분(Section 1.-CHARTS, P)에 해양과 바다에 관한 명칭표기와 관련된 결의내용은 다음과 같다. (IHO, 1920, 28-29).

 Transcription of names, and authorities to be consulted thereon.

. It is agreed that generally the literal transcription and not the phoennitic is to be adopted.

. It is agreed that for countries and islands that have not an official mothod of transcription the transcription as adopted by the controlling power should be used.

. It is agreed that, in the case of those countries using characters other than Roman, the international Hydrographic Bureau, when formed, should as soon as possible prepare an international system of transliteration and transcription of names.

 이 결의안에 따르면 지명은 표음적이 아닌 문자적 표기로 그리고 지명표기에 공식방법이 없는 국가들은 현재 영향을 받고 있는 국가의 표기법을쓰고, 로마표기법이 없는 국가들은 속히 국제표기체계를 준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결의안이 사실상 지구상의 모든 해양과 바다의 이름을 국제적으로 통일하고 공식화하게된 첫단계이다.

 이와 동시에 1919년 회의에서 바다의 한계에 대한 결의안(Resolution, Section Ⅳ-B) : “수로지와 등대표가 일치되도록 지리적 항해통보(항로고시) 마련에 대한 권고안”을 채택하였다(IHO, 1920, p.36)

   

2) 수로지

 (가) 권의 지리적 분류

 지리적구분 및 권의 분류방법에 대한 통일은 긴요하다고 판단되지 않으나 세계각국의 수로지를 간행하는 나라에 있어서는 각권말에 세계각국의 수로지를 간행하는 타국의 수로지지명 지리적 한계를 기입하여 두는 것이 가장 좋다고 본다. (동의)

 (나) 각권내용의 구성 및 구분

1. 각권내용의 구성 및 구분은 각국 수로지에서 채용한 대로 하고 그 세목은 각국 임의대로 할 것(동의)

2. 數券에 관계된 內方水圖에 관한 기사는 계속항해의 편의상 각권에 별항으로서 서로 연속하도록 하든가, 또는 관계 페이지수를 부기하여 이를 검색할수 있도록 한다

 (다),(라) 追補 및 정기간행

 각국이 수로지 개정, 증보판에 필요한 통보 및 개정자료를 모은 추보를 정기(매년 1회를 기준으로 한다.)적으로 발행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며, 이 추보는 본권과 동일 지리순으로 편찬하며 모든 경우 최근의 개정, 보충 사항은 종전의 사항을 무효로 해야만 할 것이다.

 

 8. 1926년 국제수로회의 개최-1919년 국제수로회의 결의사항이외의 사항

 

 (가) 해저지형에 관한 학술어

 해저지형에 관한 학술어 및 정의의 통일을 꾀하기 위해 이탈리아 수로부장의 제안에 근거하여 국제수로국에서 연구하여 지난 여름 원안을 작성, 각국에 보내어 그 의견을 들어보았다. 일본수로부에서도 관계전문가가 회동하여 협의한 결과, 원안에 대하여 다소의 수정을 가하여 동수로국에 회답하였다.

 (나) 각국수로부문의 연락

 매년 각국 수로부로부터 통보되는 전년도의 수행작업 및 당해연도의 계획을 다시 각국에 통보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각국은 서로 그 新改板圖誌 및 실시의 작업을 사전에 알 수가 있다. 실제로 대지진시에 일본수로부가 전소되었으나 국제수로부에서 전보 및 서류로 각국 수로국에 통보하였으므로 일본은 각국에 문서로서 원조를 신청하여 많은 편의를 제공받았다.

 또 각국에서도 여러 의견이 모였으나 결국 이사회는 아래와 같은 권고사항을 제출하였다.

(1)水路告示는 매일 서장으로 이를 발송하고 다수의 국가가 그러하듯 보통인쇄물로서 발송할 것

(2)항로표시중 변경, 개정의 계획에 부감독관리로부터의 통지의 접수와 이 통지를 기입한 고시의 발송과의 사이에 잠시도 시간의 공백을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

(3)통지는 가능하면 2개월 내지 3개월전에 이를 발송하고 필요하다고 인정될 경우 이를 고시상에 반복할 것

(4)사건종료를 보도하는 고시는 관계수로부에서 내려진 보고수령 후 이를 발포하고 타방면에서 나온 보도는 이를 시인하지 말 것.

(5)各海面에 대해 일시적 및 예비적 고시가 미완료된 것에 대한 적요월보를 자주 발행하는 것은 바람직 스러운 일이다.

(6)각국모두 전세계에 걸친 보도를 발하는 때 그 외국주재항에 있는 영사관에 모든 고시를 보내고 이를 보고자 희망하는 선장의 자유열람을 보장할 것.

(7)고시의 열람을 강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정된다. 실시되기까지는 본국가입국의 대표자는 본문제를 자국의 이사국에 보고하여 본건의 긴요함에 대해 관계당국에 깊은 인상을 주도록 할것 

(8)우발적 사고에 관한 해상경고는 전신으로 근처 수로부에 보내도록 하고 또 수로안내인을 필요로 하는 수로이외 一定部面을 관할하는 무선전신국으로부터 기상예보를 무선 방송하도록 할 것.

(9)경고는 각국어모두 B(ritish) N(otices) T(o) M(ariners)(英水路告示)와 같이 각 국수로고시를 의미하는 네단어의 머릿글자로서 전문을 이루도록 할 것.

(10)경고는 만국선박 신호서에 게재되기까지는 현재의 방식으로서 방송하도록 할 것

(11)모든 통보는 당해국수로부가 필요로 인정하는 때 이것을 반복할 것.

(12)항로표시의 변경, 개정에 관한 보도를 선박에서 요청해 왔을 때는 지정한 해면을 관할하는 무선국에서 이를 공급할 것

(13)차기 국제수로회의는 위원을 설치하여 적당한 항해상의 경고에 관한 신호표를 기초하고 만국선박신호서에 그 추가게재를 발의하게 할 것.

 

 9. 국제수로국의 간행물

 

 규약 제 45조 및 제 46조에 의하여 연보 및 수로시보를 발행하고 각국에 분배하고 있다.

(가)연보는 매년 1월에 발행하고 아래 사항에 관한 것을 게재한다.

1. 내부조직

2. 국원

3. 廳舍

4. 전년중의 통신

5. 회계

(나)수로시보는 매년 2회 발행하며 아래에 기록한 사항에 관한 것을 게재한다.

1. 수로학상 유익한 사항

2. 수로학 관련사항

3. 국제수로국의 실시사업 및 준비중인 사업, 동국이 기획하는 사업

4. 그 외에 타 수로기관 및 국제수로국에 관한 일반적 관계사항

또한 긴급을 요하는 사항은 바로 이를 간행하여 각국에 보내며, 다시금 수로시보에도 게재하도록 되어있다.  

 

. 한국과 국제수로기구

 

    1. 한국의 IHO가입

  한국은 1957년 1월 1일자로 IHO에 정회원으로 가입하였으며 國際水路會議(IHC : International Hydrographic Conference)에 우리나라 대표가 참가한 것은 1962년 제8차 회의부터이다.

水路局과 관련이 있는 국내외 협력업무는 국제수로기구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회의, 한국과 미국 또는 일본사이의 협력증진을 위한 한·미 및 한·일기술회의, 전자해도개발의 개발 및 발전을 위한 국제전자해도위원회의를 비롯하여 국제연합 산하의 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에 속하는 정부간해양과학위원회(IOC)회의 및 이와 관련된 활동 등이다.

 

    2. 한국과 국제수로기구 (IHO)

  국제수로국이 1921년 6월 모나코에서 발족한 이래 그 간 거의 전 세계의 주요 해양국이 참가하게 됨으로써 규모나 활동이 국제기구로서 손색없이 확대되어 이전의 국제수로국 規約으로서는 운영상 많은 지장을 초래하게 되었고, 또한 국제수로국 창설 당시에는 각 국 수로국장의 모임으로 출발한 관계로 규약의 내용도 단순한 局의 운영에 필요한 內部規約에 불과한 형식으로 되어있어 1967년 4월 모나코에서 개최된 제9차 국제수로회의 (1967.4.18∼5.3)에서 전문23조로 된 國際水路機構協約(Convention on the 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을 채택하고 기존의 국제수로국을 개편하여 그때까지 명확하지 않았던 동 기구를 정부간 기구로서의 성격을 명확히 하는 동시에 국제수로기구로서의 法人格 및 회원국 영역내에서의 특권 면제에 관한 규정을 두었다. 이 협약은 1967년 12월 31일까지 당시 국제수로국에 가입되어 있던 41개국 중 39개국이 서명하여 1970년 9월 22일 발효됨으로써 종전의 國際水路局(IHB)은 國際水路機構(IHO)의 사무국을 의미하게 되었다.

  IHB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국제연맹 산하기구의 하나로 출범하였으나 UN 탄생 이후 현재의 IHO는 UN산하 전문기구가 아닌 정부간 기구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1) 국제수로기구 발족

  국제수로국을 보다 근대적인 국제기구로 발전시킬 목적으로 새로운 國際水路機構(IHO : 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로 개편, 발족하게 됨으로써 명실상부한 정부간기구로서 條約의 형식을 취하기 위하여 소위원회를 설치하고 심의를 거쳐 국제수로기구의 기본문서인 條約案을 대책하게 되었다.

  이 조약의 발효는 참가 28개국(당시 41개 가입국의 3분의 2)이 條約國으로 된 날부터 3개월 후로 되어 있으므로 우리나라는 1969년 6월 20일 국회 제70차 본회의에서 비준승인을 얻어 비준서를 발송한 결과 26번째의 조약국으로 되었고 다음해 1970년 6월 22일, 28번째 가입국인 덴마크가 비준서를 기탁함으로써 마침내 1970년 9월 22일 발효를 보게된 것이다.

 

   2) 목적

  IHB 집행위원회 이사진은 항해 및 水路學에 상당한 경험을 가진 국적이 다른 3인의 이사로 구성되며, 이 중 1명이 집행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다. 또한 집행위원회 아래에 기술자문 및 사무직원 18명을 두고 위원회의 업무를 보조한다. 각 海事機關間의 수로부문에 있어서의 항구적인 협력체를 구성하고 모든 해상에서의 항해의 안전을 기하는 동시, 이를 용이하게 하는데 상호협력하며, 수로학의 발전과 수로관계자료 작성의 통일화를 위하여 상호 조정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하고 있다.

  본 기구는 자문적이고 순수히 기술적인 성격을 가지며, 기구의 설립목적은 정관에 명시되어 있다. 그 주요내용은 각 국 水路局의 업무활동 조정, 水路圖書誌의 국제적 통일, 수로측량의 효율적 수행을 위한 기술기준 채택, 수로조사 및 수로기술 개발 등이다.

  水路圖書誌의 국제적 통일화를 위하여 분과위원회 및 실무반의 협력으로 수로측량기준 SP-44, 수로측량 자격기준 M-5, 국제해도간행기준 M-4 및 전자해도 성능기준 S-52, 디지털 수로정보 변환기준 S-57 등을 제정하였다.

 1999년 5월 현재 국제수로기구 가입국은 다음과 같다.

  

< 표1 >              國際水路機構(IHO) 加入國 現況 (1999년 5월 현재)

대 륙 명

             

아 시 아

 한국, 북한, 일본, 중국, 필리핀, 타일랜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인도, 스리랑카, 파키스탄, 이란, 시리아, 아랍에미   리트, 오만, 바레인, 키프로스, 터키

19개국

아프리카

 이집트, 알제리, 튀니지, 나이지리아, 자이르, 모잠비크, 통가,      남아프리카연방

 8개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독인, 이탈리아, 스페인, 포루    투갈,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모나코,     그리스, 크로아티아, 에스토니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21개국

북아메리카

 미국, 캐나다, 과테말라, 도미니카공화국, 쿠바

 5개국

남아메리카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수리남, 트리   니다드토바고, 에콰도르, 페루, 우르과이

10개국

오세아니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파푸아뉴기니, 피지

 4개국

 

67개국

 

 또한 IHO는 유네스코 政府間 海洋學委員會(IOC)와 협력하여 大洋海底地形圖(GERCO)를 종이 인쇄물과 디지털 형태로 간행하여 해양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IHO 디지털수심자료센타를 미국 국립지구물리센타에 설치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대양해저지형도는 현재 제5판을 축척 1/1,000만으로 간행중이며, 북국 및 남극을 축척 1/1.600만으로 하는 2매를 포함, 총 18매로 구성하였고 제5판의 디지털本이 간행되었다.

 

  3) 회원가입, 자격정지, 탈퇴

   국제수로기구협약 채택 당시 국제수로국 사업에 참가하고 있던 국가는 비준 또는 승인에 관한 유보 없이 서명을 하거나, 비준 또는 승인을 조건으로 서명한 후 비준서 또는 승인서를 기탁함으로써 협약당사국이 될 수 있었다.

  協約의 효력발생 이후에는 회원국의 지위가 모든 해운국에 개방되어 있는 바, 자국이 보유하는 선박톤수를 명시하여 모나코 정부에 가입을 신청하여 회원국 정부 3분의 2이상의 승인을 받아 회원국이 된다.

  분담금의 납부가 2년 간 연체되어 있는 회원국은 미불 분담금을 납부할 때까지 자격이 정지된다.

  회원국의 탈퇴는 협약의 효력 발행일로부터 5년이 경과한 후, 적어도 1년 전에 모나코정부에 통고하고, 통고가 접수된 1년 후에 탈퇴할 수 있다. 탈퇴의 효력은 통고의 기간이 만료된 다음 해 1월 1일에 발생한다. 탈퇴국은 기구에 대한 자국의 채무가 탈퇴 전에 결제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는 그 채무가 결제된 때까지 재가입할 수 없다.

 

  4) 조직

 기구는 회원국 정부의 대표로 구성되는 國際水路會議와 이사회에 의하여 운영되는 사무국(國際水路局)이 있다.

  (가) 국제수로회의(IHC : International Hydrographic Conference)

  국제수로회의는 매 5년마다 모나코에서 개최되며, 회의는 사무국의 사업에 관한 보고를 심사하고, 사전에 준비된 의사일정에 따라 토의한다. 의사일정에 등재되어 있지 않은 문제도 3개 회원국 이상의 제안이 있을 경우에는 이를 검토한다.

  각 회원국은 이사의 선거를 제외한 기타 모든 사항에 관하여는 1개의 투표권만을 보유한다. 회의에서 모든 결정은 이사 선거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의에 출석한 정부대표의 단순과반수에 의한 의결로서 행해진다. 이 단순과반수는 기술결의서에 수록될 결의에 있어서는 어떤 경우에도 전체 회원국 정부의 3분의 1이상의 찬성표를 포함하여야 한다. 이사 선거에서 회원국의 투표권은 각 국의 보유선박 총톤수의 비율에 따른 분담금 비율에 따라 할당된다. 이에 따라 각 회원국은 2개의 투표권을 보유하며, 10만톤 이상의 선박(해군 및 상선단)을 보유한 회원국은 등급에 따라 1 내지 3개의 추가 투표권을 갖는다. 회의에서 채택된 결의도 법적 구속력을 갖지는 않으며, 다만 각 국내기관이 실시하도록 권고할 국제적 표준을 정하는 것뿐이다. 한국은 5장의 투표권을 가지고 있다.

  정기회의 외에 회원국 정부 또는 사무국의 요청에 의하여 회원국 정부의 과반수 이상의 승인을 얻을 경우, 임시회의를 개최할 수 있다.

 국제수로회의에는 회계위원회가 설치되어 기구의 회계관리의 감독을 행한다. 회계위원회는 각 회원국 정부에서 파견되는 각 1명의 대표자로 구성되며, 총회의 회기중이나 또는 필요한 경우 수시 임시회의로 회합한다. 이밖에도 각종 기술적 문제를 토의하는 위원회가 구성된다.

  (나) 집행위원회(Directing Committee)

  집행위원회는 국적이 다른 3명의 이사로 구성되며, 그중 1명이 위원장이 되어 기구를 대표한다. 위원 및 위원장은 국제수로회의에서 비밀투표에 의하여 선출된다. 위원의 임기는 5년이며, 재선이 가능하다.

  위원회는 사무국을 운영, 통상 주 2회 회합하며, 중요문제는 전체 위원회에서 심의한다.

  (다) 國際水路局(IHB : International Hydrographic Bureau)

  국제수로국은 기구의 사무국으로서 집행위원회에 의하여 운영되며, 기구가 필요로 하는 기술직원 및 사무직원으로 구성된다. 종래의 “國際水路局”이란 명칭은 국제기구와 동 사무국에 대하여 활용되었으나, 新協約 발효 이후에는 이 명칭을 기구의 사무국에 대해서만 사용하고 있다.

 

  5) 재정

  재정은 회원국 정부가 자국이 보유하는 선박 톤수를 기초로 설정된 등급에 따라 납부하는 통상 년차분담금과 기부금, 보조금, 기타재원(단, 이 경우에는 회계위원회의 승인을 얻을 것을 조건으로 한다.)으로 운영하며, 기구의 모든 자금은 집행위원회가 관리한다.

  기구의 예산은 이사회가 작성하여 회계위원회가 검토한 후 국제수로회의에서 승인한다. 회원국은 회계규칙 제4조에 의하여 2計座를 분담한다. 보유 선박 중 총톤수 100톤 이상 선박의 총톤수 합계가 10만톤을 초과하는 회원국은 보유 船復量에 따라 정해진 등급별로 추가 분담한다. 회계규칙은 통상 회의에 앞서 각 회원국이 그 보유선박의 總噸數를 보고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보고된 톤수는 다음 5년간 분담액 결정의 기초가 된다.

  우리나라는 1999년도에 총 선박보유톤수 6,092,000톤에 대해 349,650프랑의 分擔金을 지불하여 세계 70개 회원국 중 12위를 차지하였다.

  기구는 1919년 이후 1929년 임시회의를 포함하여 16회에 걸쳐 국제수로회의를 모나코에서 개최하였고, 이를 회의에서는 제반문제에 관한 연구 및 결의가 이루어 졌으며, 그중 주요한 것으로는 國際水路局 規約 및 新機構 協約, 海圖, 水路誌, 燈臺表, 航行通報, 水路測量, 大洋水深圖의 작성 등이 있다.

  IHB는 國際測量技術者聯盟(FIG), 國際燈臺協約(IALA), 國際海事機構(IMO), 政府間海洋學委員會(IOC), 南極條約, UN海洋法協約 등 관련기구와 해상안전 및 기술자문에 대한 상호협력을 위하여 이들 기구의 정기총회 및 분과위원회에 대표를 상호 파견하고 있다. 특히 1995년 5월 서울에서 개최된 南極條約協議 當事國會議에서는 조세연 수로국장이 IHO를 대표하여 IHO의 보고서를 발표하였으며, IHO 決議事項을 총회에서 통과시킨 바 있다.

  우리나라는 1973년 3월 1일부터 1974년 1월 28일까지 IHB 제2과장으로 강호진 당시 수로과장이 파견되어 근무한 바 있으며, 1997년 제15차 회의에서는 수로국장 조세연이 “東海”명칭을 국제적으로 통용된 수 있도록 발언한 바 있다.

  

. 국제수로기구와 동해표기

 

 국제수로기구는 1919년 6월 런던에서 개최되었다. 이 회의는 실질적으로 1912년의 만국항해회의와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지만 국제수로회의로서는 첫 번째 회의였다

 20세기들어 바다의 명칭이 국제적으로 정리된 중요한 국제회의가 한국의 참여없이 개최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동해의 명칭이 1세기동안 특정국가의 명칭으로 표기된 계기가 된 것이다.

 4개국에 둘러싸인 바다명칭의 표기가 특정국가의 명칭으로 지칭이 되고 있는 경우는 21세기에 들어 와서는 없다.  북해에서 보는바와 같이 주변국의 합의에 의해 자연스럽게 개칭되고 당사국들의 이해속에서 조용히 분쟁없이 해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IHO의 결의안에 의하면 동해와 같이 몇 개주권국가의 영향하에 있는 바다명칭에 있어 한이름으로 통용되지않을 경우에는, 현재 관련국가에서 쓰고 있는 명칭을 새이름이 조정될 때까지 모두 표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80년전 국제수로회의에 한국대표가 참가하였다면 지금과 같은 표기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과 같은 환경에 놓여 있었던 호주, 인도, 이집트와는 달리 한국은 어떤 의사결정에서도 소외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은 국제수로기구 회원국 70개국중 12번째로 많은 분담금을 내는 등 국제수로기구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내년에는 『해양과 바다의 한계』책자가 새로 개정될 예정으로 있어 그동안 IHO의 결의사항의 준수를 주장해온 한국으로서는 큰 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1919년 회의에서는 해도와 바다의 한계에 관한 중요한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이 결의안에 따르면 지명은 표음적이 아닌 문자적 표기로 그리고 지명표기에 공식방법이 없는 국가들은 현재 영향을 받고 있는 국가의 표기법을쓰고, 로마표기법이 없는 국가들은 속히 국제표기체계를 준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결의안이 사실상 지구상의 모든 해양과 바다의 이름을 국제적으로 통일하고 공식화하게된 첫단계이다.

 이와 동시에 1919년 회의에서 바다의 한계에 대한 결의안(Resolution, Section Ⅳ-B) : “수로지와 등대표가 일치되도록 지리적 항해통보(항로고시) 마련에 대한 권고안”을 채택하였다(IHO, 1920, p.36)

 회원국은 위 결의안에 따라 해당 바다의 한계에 대한 자료를 모두 IBO에 제출하였다. IBO는 이 시안을 회람서신(No. 1-H of 23)형식으로 회원국에 배포하여 국제수로국의 결정과 안에 대하여 의의가 없는지 문의하기에 이른다. 바다의 한계를 명시한 이시안에 처음으로 동해가 “Japan Sea"로 표기되어 전회원국가에 배포하게 된다. 이시안에 구체적으로 ”Japan Sea(Mer du Japan)"의 한계를 방향에 따라 명시하고 있다. 이 회람서신에는 모두 48개 바다 및 해양의 한계와 각 바다의 이름이 등록되었다. 그리고 1923년 2월 15일을 기해 “일본해”가 동해를 대신하여 국제사회에서 공인을 받기위하여 회원국에게 회람되기 시작했다. 이후 사무국은 문제되는 지역에 대한 한계를 조정하여 1929년 모나코에서 개최된 제1차 보충 국제수로회의에 최종 출간물 Spec. Pub. No23(1928년 8월 출간)『Limits of Oceans and Seas』을 제안서로서 제출하여 공식적으로 승인을 받게 되었다.

 따라서 1929년 국제적으로 “동해”는 “일본해”로 공식화 되는 결과를 빚게 되었다. 그이후 이 해양과 바다의 한계『Limits of Oceans and Seas』책자는 1937년, 1952년, 1986년에 각각 개정판이 발간되었고, 이제 내년에 개정판이 출간될 예정이다.

 

 2. 국제수로회의에의 수정제의

 우리나라는 1973년 3월 1일부터 1974년 1월 28일까지 IHB 제2과장으로 강호진 당시 수로과장이 파견되어 근무한 바 있으며, 1997년 제15차 회의에서는 수로국장 조세연이 “東海”명칭을 국제적으로 통용된 수 있도록 발언한 바 있다.

  국제수로회의(IHC : International Hydrographic Conference)에 우리나라 대표가 참가한 것은 해군 수로국 시대인 1962년 제8차 회의부터이다.

 1997년 4월14부터 25일까지 개최된 회의에 수로국장 조세연, 수로주사 최신호화 외무부 사무관 조영무, 서울대교수 이기석이 참석하였으며, 북한도 대표 3명이 참석하였다. 특히 이 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한 조세연 수로국장과 이기석 서울대교수는 발언을 통하여 1928년이래 국제수로기구(IHO)간행물인 “해양과 바다의 한계”에서 東海를 “日本海(JAPAN SEA)"로만 표기하는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동해는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고유 명칭이 “東海”였음을 상기시키면서, 우리 정부에서도 국제적 통용 표기를 “東海(EAST SEA)"로 결정(1992. 6)한 바 있고, 제6차 동부아시아 수로위원회 정기총회(1995. 3. 27 말레이시아), 한·미 수로기술회의(1994∼19097)에서 “東海” 표기의 정당성을 주장한바 있고 아울러 IHO회원국에도 “동해”표기를 사용하여 줄 것을 요구한바 있다.

 사무국이 준비중인 IHO 간행물 “해양과 바다의 한계” 개정판(4판)에는 “東海(EAST SEA)"로, 또는 “東海”와 “日本海”로 병기할 것을 요청하였다. 우리의 입장표명에 대하여 인디아,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 등 다수국가에서 동의하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이외에도 동해포럼(대표 김  신 경희대 교수)에서는 인터넷(www.eastsea.org)과 국영문 출판물을 국내외에 배포하여 “동해” 표기의 객관적 타당성을 주장해왔다.  

 80년전 18개국과 식민지국 3개국 대표가 런던에서 국제수로기구를 만들고 해양과 바다의 한계를 회람 시켰으나 한국은 그당시 일제에 합병된 상태로 여기에 참여치 못하게되어 “동해”란 고유의 지명이 “일본해”로 바뀌게 되었다. 이와같이 불합리하게 변경된 지명은 원래지명으로 수정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조사한바에 의하면 일본은 국제수로기구가 설립된 1919년이후 “해양과 바다의 한계”를 정하는 시점인 일제강점기에 “朝鮮海灣”이란 지명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동중국해를 “東海”로 표기하는 등 표기에 혼선을 보이고 있음이 밝혀졌다. 동경수로부가 간행한 1922년판 『水路要報』(1년3호)에 게재된『本邦船舶遭難圖』에 “朝鮮海灣”, “東海”란 지명을 표기하고 있다. 즉 “東海”란 명칭은 일제강점기 일본에서도 대륙의 동쪽바다란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東海”는 국제수로국이 발간한『해양과 바다의 한계』(1929년)에는 “東中國海”(East China Sea)로 표기된다.

 한편 IHB는 1972년 이래 지명표기에 대한 자체 결의안을 채택하여 국제적으로 지명표기에 있어 동일한 시책을 적용하고 있으며(A 4.1), 아울러 지명의 국제표준화를 위하여 1974년에 채택된 지명표준 결의안(A 4.2)을 운영하고 있다. 이 결의안중 A 4.2.6은 동해와 같이 몇 개 주권국가의 영향하에 있는 바다명칭에 있어 한 이름으로 통용되지 않을 경우에는 현재 관련국가에서 쓰고 있는 명칭을 새이름이 조정될 때까지 모두 표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   

 

 국제수로기구는 21세기들어 처음으로 『해양과 바다의 한계』(2002)를 발간할 준비를 하고 있다. 1912년의 만국항해회의 이후 1세기가 지나 이제 뉴밀레니엄시대에 새로운 해양환경에 걸맞는 『해양과 바다의 한계』가 발간되어야 할 것이다.『해양과 바다의 한계』(2002)에 실릴 “동해”의 표기는 다음과 같은 다섯가지안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다섯가지 안은 다음과 같다.

 Ⅰ안, East Sea로 표기하는 안

 Ⅱ안, East Sea/Japan Sea로 병기하는 안

 Ⅲ안, Undefined Name로 표기하는 안

  (note : 최근에는 일본해로 표기되어 있지만 역사적으로 동해, 동방해, 한국해로 지도에 나타나 있다. 권고된 이름 자체에 대해서 강한 의견차이가 있기 때문에 받아들일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름이 정의가 안된 것으로 되어있다.)

  Ⅳ안, 동해지역을 아무것도 표기하지 않는 안

  Ⅴ안, 개정판을 발간하지 않는 안

  우선 다섯번째안은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사료된다. 국제수로기구에서 처음으로 『해양과 바다의 한계』를 발간한지 거의 1세기가 지나고 있다. 그당시의 제국주의시대와는 세계환경은 너무나도 많이 변했다. 국제수로기구는 국제기구이며, 국제기구는 전세계적인 대화의 도구역할을 한다. 새로운 국제수로에 대한 자연적 현상, 즉 퇴적 등에 의해서도 바다의 환경은 변할 수 있다.  

 1919년의 국제수로회의 목적은 “각국의 수로전문가들이 서로 만나 수로관계의 문제에 관해 토의, 상의할 기회를 줄 것”등의 3개항으로서, 1912년의 만국항해회의와 마찬가지로 이 회의의 주요목적이었다.

  이 회의의 성격과 결의사항의 실행관계에 대해서는 다음 항에 의해 알수 있다.

 (가) 1919년 6월 24일 개회식에서의 연설에서 영국 수로부장은 다음과 같은 선언을 했다.

‘본인은 처음부터 본회의의 결의가 곧바로 실행되리라고는 예상치 않는다. 또한 참석한 여러 대표의 다수는 각종 사항에 대해 마지막 결정을 내릴 지위에 있지 않다는 점은 명백한 일이다. 그러나 본인은 각 대표자가 충분히 심의 가능한 사항 및 일치가 가능한 사항에 대해서는 각자의 의견과 함께 이를 본국정부에 보고하여 그 실행을 꾀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나) 이에 대해 회의가 시작된 직후 노르웨이 위원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서 영국 수로부장은 ‘결의사항의 실행은 각국정부의 찬부를 선결로 하며, 경비 및 그 밖의 조건에 의해 결정 되어야만 하는 사항으로, 본 위원등은 단순히 기준이 되는 여러 사항에 관해서 합의한 후 이를 기록에 남기려 하는 것에 불과하다.’ 라고 답변하였다.

 (다) 7월 16일 본회의 마지막 총회에서 의장인 영국 수로부장의 제의에 대해 만장일치로 다음과 같은 결의가 내려졌다.

 “각국정부에서는 본회의의 결의사항을 승인한 후 가능한 한 신속히 이를 실행할 것을 희망한다.”

 

 이상의 사실에 의해 살펴보건대 실행 시기를 확실히 정하지 않고 關係圖誌의 신간, 혹은 개정판을 기회로 하여 점차 결의방식대로 개정시켜 보려는 희망사항이었다.

 다시말하면 제1차 수로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은 바뀌지 않는 것이 아니라 향후 신간이나 새로운 개정판에 의해 개정될 수 있음을 뜻한다. 이것이 국제수로기구의 설립정신이었던 것이다.

 21세기에 발간되고 있는 세계지도에 “북해” (North Sea)의 예에서와 같이 4개국으로 둘러쌓인 바다를 특정국가의 이름으로 표기하고 있는 경우는 하나도 없다.  

 넷째안인 브랭크로 두는 안 역시 실행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21세기들어 세계는 대서양시대에서 태평양시대로 바뀌고 있다. 태평양에서 동해 그리고 동중국해로 이어지는 물동량은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이해역이 아무런 바다명칭을 표기하지 않은채로 둔다면 국제적 물류의 통행이 불안해지는 등 인류공동의 번영에 큰 혼란이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

  셋째안 역시 불합리한 안이라고 할 수 있지만 국가간의 합의점을 찾는 전단계로서 그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Undefined Name란 것은 어느 특정한 명칭을 표기하는 것이 아니라 브랭크로 놔둘수는 없고, 또한 『해양과 바다의 한계』개정판을 발간하지 않을 수 없다는 현실성에 바탕을 둔 것을 의미한다. 즉 최종안은 아니지만 바람직한 해결방안의 전단계로서 이해할 수 있다

 둘째안은 IHO의 기본정신을 따르는 객관적으로 합리적인 안이라고 할 수 있다.

 IHB는 1972년 이래 지명표기에 대한 자체 결의안을 채택하여 국제적으로 지명표기에 있어 동일한 시책을 적용하고 있으며(A 4.1), 아울러 지명의 국제표준화를 위하여 1974년에 채택된 지명표준 결의안(A 4.2)을 운영하고 있다. 이 결의안중 A 4.2.6은 동해와 같이 몇 개 주권국가의 영향하에 있는 바다명칭에 있어 한 이름으로 통용되지 않을 경우에는 현재 관련국가에서 쓰고 있는 명칭을 새이름이 조정될 때까지 모두 표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English Channel/La Manche가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첫째안이 객관적으로 가장 타당한 안이라고 할 수 있다. IHB는 원래의 바다이름을 찾아주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프랑스,독일,영국,덴마크에 둘러싸인 바다가 북해(North Sea)로 표기되고 있는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본연구에서는 1919년의 국제수로회의의 결의안을 분석한 결과 국제수로회의의 진정한 창립이념을 알게되었다. 관계도지의 신간 혹은 개정판을 기회로 하여 점차 결의방식대로 개정시키고자 하였고, 1919년의 비록 참가대표 42명중 군인이 32명에 이르는 등 창립시와는 다르게 이제는 전문가 위주로 운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군사적 관점이 아닌 기술적 관점에서 바다를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영국은 6명의 대규모 대표단을 보내는등 회의를 주도했지만 「북해」를 받아들인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바다는 인류공동 번영의 장으로서 만이 그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 參考文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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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수로요보(International Hydrographic Bulle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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