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역사 왜곡 저의 (국방저널)

 

일본이 또다시 역사교과서를 왜곡함으로써 외교문제화 되고 있고 우리정부는 5월 8일 35개항의 수정요구서를 일본측에 전달 하였다.

어디 역사교과서 뿐이랴! 일본 지도층 인물들의 잇단 망언으로부터 독도영유권 주장, 동해의 일본해 명칭 표기 등에 이르기까지 일본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역사왜곡은 그 뿌리도 깊을 뿐만 아니라 가히 전방위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왜 일본은 주변국과의 선린우호를 해치고 정치외교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이같은 행보를 계속하는 것일까?”

당연한 궁금증임에도 불구하고 그 해답을 찾아 공유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많이 부족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특히 일본의 궁극적 국가전략과 목표를 중심으로 상기 사안 들을 포괄하는 활발한 논의를 통해 국민들에게 일본의 실체를 정확히 전달하려는 노력이 너무 소홀하였던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有備無患', `知彼知己 百戰不殆'라 했듯이 일본의 저의를 명확히 알림으로써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절실하다.

끈질긴 역사왜곡의 `일본해'

동해는 삼국이 건국되기 이전인 B.C 59년 경부터 사용되어 온 우리민족의 유구한 명칭이다.(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시조 동명왕' 편에 최초기록)

동·서양의 지도사에 의하더라도 동해는 `한국해' `조선해'와 함께 오랜기간 사용되어 온 역사깊은 이름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세기 이후 일본은 개방정책을 통해 우리와는 달리 국제적 위치를 서서히 확보해가며 서양에서의 일본에 대한 인식을 점차 확대시켰고 이시기에 라 페로우즈(La Perouse)백작이 최초로 동해안을 탐사하고 `일본해' 표기를 사용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확대되어 나가다 19세기 후반 들어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 논리가 더해져 `일본해'라는 표기가 정착 되었다.

이후 러·일전쟁에서의 승리를 시점으로 `동해'는 힘의 논리에 따라 `일본해'로 공식 표기되기 시작하였고 1904년 러·일강화조약(포츠머스조약)에서 결국 `일본해'라는 명칭이 국제적으로 공식 사용되었다.

그러나 동해가 일본해로 둔갑하게 된 결정적 요인은 국제해역 명칭을 관장하는 정부간 기구인 국제수로기구(IHO)가 1929년 특별간행물 `The Limits of Ocean and Seas'를 발간하기 위해 당시 통용되고 있던 해양의 명칭에 관하여 각국의 의견을 문의하였을 때 당시 우리는 일제식민지하에 있었던 관계로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되는데 대하여 어떠한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던 점이다. 그 결과 `일본해'라는 표기가 그때부터 국제적으로 자리잡고 광범위하게 쓰이게 되었으며 오늘에 이르게 된것이다. 참으로 통분 할 일이다.

결국 일본은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근세의 국제정세를 최대한 이용하여 `동해'를 `일본해'로 바꾸고 공식화 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물론 동해를 일본해로 부른다 해서 일본의 영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內海라는 오해가 있을 수 있고 명칭이 지니는 함축성과 상징성을 무시할 수 없으며 국제성을 띤 바다의 고유명칭을 특정국가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특히 섬나라인 일본이 과거 대동아공영권을 주창하며 자행한 대륙침략의 정당성을 부여 하고자 이용한 것도 `일본해'임을 고려해 본다면 동해의 명칭은 반드시 되찾아져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1991년 유엔에 가입한 직후부터 동해를 되찾기 위한, 뒤늦었지만 적극적인 활동을 추진하고 있다. 지명표준화를 위한 유엔회의 및 지명전문가회의(GEGN)를 통해 유엔에서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여 국제적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등 다각적 노력을 하고 있으며 국내 NGO들도 민간차원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해 온 결과 현단계에서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 하고자 하는 일부 국제적 움직임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하였고 IHO고위관계자가 2002년 발간예정인 IHO의 공식책자인 `바다의 경계'에는 “두 명칭병기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가시적 진전이 있었으나 한번 빼앗기고 국제적으로 왜곡된 동해의 명칭을 우리 의도대로 다시 찾아오기 위해서는 일본의 반대 등 수많은 장벽을 뛰어넘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 할 것이다.

일본 지도층의 뿌리깊은 망언

일본군국주의 역사에 대한 일본 지도층 인사들의 망언은 참으로 뿌리가 깊다. 먼저 1953년 10월 한·일회담 대표였던 구보다로부터 시작된 망언은 큰 줄기만 잡아도 1958년 하토야마(한·일회담대표) 및 오노(자민당부총재), 1962년 시이나(외상), 1965년 다가스키(한·일회담대표), 1974년 다나까(총리), 1979년 사쿠라다, 1982년 마쯔노(국토청장관), 1986년 후지오(문부상 3차례), 1988년 오쿠노(국토청장관), 1990년 오자와(중의원), 1994년 나가노(법무대신), 1995년 와타나베(전 외무장관), 1996년 에토(총무청장관), 2000년 모리(총리) 등 부지기수 이다.

소위 일본을 움직이는 인물들이 집요하고도 꾸준하게 망언을 이어가고 있는 셈인데 망언내용을 종합적으로 정리해보면 대략 다음의 세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한·일합방은 국제사회의 바람에 따라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둘째, 일본은 중국과 러시아의 침략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한 것이다. 셋째,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 시대에 한국을 위해 좋은 일도 많이 했다. 문제는 망언을 한 인물들이 일본의 보수우익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며 그들의 영향력이 일본을 움직일 수 있을만큼 크다는 것이다.

전후 일본은 극동군사재판에서 A급전범 25명중 도조히데키 등 7명만이 사형에 처해졌고 16명은 무기징역, 2명은 유기징역을 선고 받았으나 얼마안가 샌프란시스코조약 이후 전부 특별사면 되어 이후 일본정치를 주도하게 되었으며 이들의 인맥이 고스란히 이어져 오늘의 일본 우익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전후 부흥과 재군비의 주역이었던 요시다가 길러낸 소위 `요시다출신'으로 일컬어지는 보수적 관료출신 정치인들과 함께 일본의 신제국주의, 국수주의의 중추를 이루게 되었다.

결국 이들의 망언이 한 개인의 망언으로 과소평가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오늘날 일본의 각료들이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그처럼 애절하게 참배하는 배경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 되어야 할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조약-Treaty of Peace with Japan:1951. 9. 8 제2차 세계대전을 종료하기 위해 연합국이 일본과 맺은 강화조약 또는 평화조약)

(야스쿠니신사:메이지시대 이래 순직한 군인 등 250만명의 위패를 보관한 곳. 78년부터는 태평양전쟁을 주도했던 도조 히데키 등 전범의 위패 보관으로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임)

따라서 일본의 정서를 대변한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망언자들은 과거 일본에 의해 저질러진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예찬하는 분위기를 일본내에서 먼저 조성하고 외교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점차 국제사회에 확산시킴으로써 종국에는 2차대전 전범국의 멍에를 벗어버리려는 국가적 전략을 수 십년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진행 시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집요한 독도 영유권 주장

독도는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두 말 할것도 없이 우리의 영토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왕 13년조(512년)에 독도에 관한 기록이 최초로 나타난 이래 수많은 문헌과 자료가 이를 입증해 주고 있고, 심지어 일본의 명치정부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영토임을 확인한 1869~70년의 공문서인 `朝鮮國 交際 始末 內探書'를 비롯한 일본측 문헌으로도 독도가 우리영토임은 분명히 입증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60년대 이후 집요하게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일찍부터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도서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한국측 사료의 신빙성을 무리하게 훼손시키고 일제시대의 편견에 가득찬 자기들의 논문과 문서들은 전혀 비판없이 인용하는 치졸한 교만을 서슴없이 감행해 오고 있다. 특히 1996년 2월 9일에는 이케다 외상이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일본의 영토”라는 망언을 하였고 이를 받아 讀賣新聞이 내용을 게재하였는데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일본의 지식인들은 침묵하였고 일부 우익단체 는 어민들을 선동하여 전적으로 지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이렇듯 일본이 동해의 小島에 집착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독도의 전략적 가치 때문이다. 동해 중앙부에 위치한 독도는 해양통제권 장악이 용이한 지정학적 중요성 외에도 주변국 해양활동 감시 및 견제가 가능하고 조기경보 및 탐지권의 자동연장으로 군사작전 영역의 확장을 부여해 주는 등 안보적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며 경제적인 면에서도 EEZ선포에 따른200해리 기득권 확보와 주변의 풍부한 어족자원 확보 등 해양자원 보호 및 관할권의 확장과 해상교통로 보호의 거점이라는 잇점을 제공해 주는 섬이다.

특히 한·일간에는 서로의 가슴을 겨누는 `비수'역할을 할 수 있어 독도의 전략적 중요성은 대단히 높다. 이러한 연유로 일본은 결코 독도를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며 바로 군사대국화를 겨냥한 사전 전략적 포석인 셈이다.

(1876년 미국은 러시아의 제의로 알래스카를 720만달러에 사들였다. 시베리아 대륙과는 불과 1.6km떨어진 이곳에는 소련의 미사일기지가 있었어야 할 자리에 미국의 미사일기지가 있다. 지금 러시아는 선조들의 어리석었던 행동에 땅을치고 원망하고 있지 않겠는가!)

후손들을 위한 애국적(?) 역사교과서 왜곡

역사교과서 왜곡의 본질은 표면적으로는 일본내 보수우익 집단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 의해 자행되고 있지만 사실상 일본정부에 의해 진행되어 왔다는 데 있다.

그것은 우리 정부가 2001년 5월 8일 35개항에 달하는 수정요구서를 일본측에 전달한 이후 일본의 총리와 문부상이 첫 반응으로 “교과서 재수정은 있을 수 없음”을 천명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으며, 특히 일본의 보수우익 집단이라는 것이 위에서 이미 설명했듯 일본정부를 좌지우지하는 실질적인 정책주도 그룹이라는 점에서 이론의 여지는 없을 것이다.

왜 일본은 역사교과서 마저도 왜곡할까?

왜곡된 부분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면 그 이유를 어느정도는 알 수 있다.

즉 고대사와 중세사 부분에서 일본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륙에 대한 영향력 행사와 지배설을 일관되게 왜곡하고 있다. 한·일 학계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임나일본부설'이 그 대표적 사례로써 결국 이러한 논리를 근대사에 까지 연장하여 일본의 과거 대륙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동질성을 은연중 부여하고 동북아의 패권국으로서의 자부심을 후손들에게 심어주기 위한 것이다.

또한 근대사 부분에서는 일본의 대륙침략과 조선침탈, 태평양전쟁에서의 각종 만행을 합리화와 미화를 통해 진실을 왜곡함으로써 결국 과거 범죄행위에 대한 오명을 벗어버리고 전범국의 멍에로부터 탈출하기위한 몸부림인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시도가 일부 우익 민간차원이 아닌 일본정부에 의해 교묘하게 저질러지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 군국주의의 향수와 부활이 염려되는 것이다.

숨겨진 일본의 노림수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는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일본이 역사왜곡에 임하는 접근방법이다. 우리말에 `거짓말도 반복하다 보면 사실화 된다'는 말이 있듯 일본은 역사왜곡에 대해 단기적으로는 관련 당사국의 반발에 부딪히고 외교적 어려움에 처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이를 지속적이고 끊임없이 반복하다 보면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어 관심이 적을 수 밖에 없는 3국들에게는 왜곡한 역사를 사실로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음을 노리고 오늘날까지 집요하게 노력해 오고 있는 것이다. 결국 3국들의 용인 내지는 인정을 통해 일본에 유리한 국제적 분위기를 형성하여 그러한 반발과 항의를 용해하고자 하는 전략인 것이다. 동해를 일본해로 빼앗는데 성공한 예가 그 대표적 사례이며, 또 한가지 같은 맥락으로 본다면 우리의 전통 음식인 김치를 국제사회의 힘을 빌어 `기무치'로 대체하기 위해 노력하다 우리의 발빠른 대응으로 실패로 돌아간 사례도 있지 않은가.

바로 이러한 접근방식이 현재도 독도문제와 망언, 교과서 왜곡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이 모든 왜곡노력의 정점에는 일본의 치밀한 국가목표와 전략이 숨어 있다. 즉 과거의 영화(?)속에 도사리고 있는 전범국가의 멍에를 벗어버림과 아울러 군사대국화의 길을 걸음으로써 저들이 말하는 소위 `보통국가'가 되어 다시한번 과거의 `대동아공영권' 이상가는 세계의 패권국이 되겠다는 것이다.

오늘날 경제대국을 건설한 일본이 이를 토대로 국제사회에서의 정치외교적 영향력은 충분히 확보 하였으나 군사부문 만큼은 전범국의 멍에에 걸려 국군 조차 보유하지 못한 현실을 불구국가로 보고 보통국가화 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이 추구하는 1차적 전략이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이다.

일본은 이미 국제적 영향력을 통해 상임이사국 수를 7개국으로 늘리려고 하는 움직임을 일으키고 있다. 유엔분담금을 미국 다음으로 많이 내는 일본이 상임이사국이 된다면 일본과 독일을 적국으로 규정한 유엔헌장 107조는 수정되거나 삭제될 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일본은 과거범죄의 멍에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면죄부를 받음은 물론 자동적으로 부여되는 군사참모위원회의 상임이사국 지위를 이용해 자위대를 해외파병 할 수 있는 길도 열리는 것이다. 한·일합방 또한 정당성과 합법성을 부여받게 됨은 물론이다.

결국 1차적 목표가 달성되면 종국적으로 일본은 그동안 축적해 놓았던 경제력과 첨단 기술력을 바탕으로 그들의 최대목표이자 국가전략인 군사대국화가 그들 의도대로 가능하게 됨으로써 과거와 같이 동북아의 패권을 장악함은 물론 나아가 미국과 유엔중심의 신국제질서 하에서의 국제적 영향력과 세계안보의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것이 일본이 노리는 전략임을 잘 알아야 한다.

맺음말

역사의 잘못은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과거의 죄악을 또다시 반복하려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하여야 하는가?  일본이란 나라의 오도된 끈기와 집요함을 보면서 그에 상응한 대응과 대비가 우리에게도 있어야 함을 절실히 느낀다. 어느날 갑자기 세계지도에 동해가 아닌 일본해가 튀어 나오고 독도가 竹島로 표기되고 일본에 의해 왜곡된 동북아의 역사가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면 뒤늦은 대응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일부 학자들만의 연구와 노력이 아닌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국가적 차원의 노력과 활동이 국제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불순한 일본의 의도를 꺾고 우리의 후손들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남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